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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야기 : 중국관광지

북경

중국

천안문광장

천안문 광장은 북경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으며, 광장의 남북길이가 880M, 동서의 넓이가 500M, 면적이 44만 평방미터이다. 광장 안에는 100만 명의 군사가 들어가 집회 및 행사를 할 수 있으며, 전세계 도시광장 중 그 규모가 가장 크다.
광장 북쪽에는 천안문이 우뚝 솟아 있고, 중앙에는 인민영웅기념비가 세워져 있으며, 기념비 남쪽으로는 모택동 주석 기념당과 정양문이, 동서 양측에는 중국역사박물관과 인민대회당이 있다.
천안문은 원래 명청(明淸) 시기 황성의 정문으로, 명나라 영락 15년(1417)년에 건조를 시작하여, 당시에는 "승천문"이라고 불렀다. 여러 번 불에 탔는데, 1651년에 개수한 후 "천안문"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명청 시기 황제는 매년 동지 때 천단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하지에는 지단에서 땅에 제사를 지내고, 중춘에는 선농단에서 몸소 밭갈이하였으며, 황제의 대혼,출정 등 중요행사 때 출입하던 문으로, 조령을 발표하던 곳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천안문은 성문이 5개, 중루의 둥근 기둥이 9개이며, 중간문 전후에는 각각 한쌍의 한백옥석으로 만든 화표가 서있는데, 꼭대기에 석수가 웅크리고 있고, 기둥에는 빙 둘러가며 구름송이를 조각하여 그 사이에 거룡(巨龍)이 서리도록 하였으며, 앞뒤에는 두 쌍의 돌사자가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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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영웅기념비

1958년 5월 1일 천안문 광장 남쪽에 건립된 첨탑으로, 혁명을 위해 목숨을 바친 혁명전사들을 기리기 위한 기념비 이다. 기념비 하단에는 높이 2m의 대형부조 위에 최근 100년 간의 혁명역사가 새겨져 있으며, [인민영웅영수불후(人民英雄永垂不朽):인민영웅은 영원불멸이다.]라는 모택동의 글귀가 새겨져 있다. 또한 뒷면에는 주은래(周恩來)가 쓴 비문이 새겨져 있고, 1989년 6월 4일 천안문 사건 당시 생긴 총탄자국이 아직도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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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쩌뚱주석 기념당

천안문 광장 남쪽의 인민영웅기념비 바로 뒤에 위치해 있으며, 1976년 9월 9일 사망한 모택동 주석의 유체가 배례실(拜禮室)의 수정관에 안치되어 있다. 기념당은 1976년 11월 24일 기공하여 1977년 9월 9일에 완공하였는데, 공사에만 70만 명의 노동력이 동원되었다. 예전에는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았으나, 최근에는 일반인들도 방문하여 참배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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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대회당

중국정치의 중심이 되는 곳으로, 한국의 국회의사당에 해당된다 할 수 있다. 1959년 9월 준공되었으며, 총면적은 약 17만㎡로 중앙홀(만인대회당)은 1만 명의 수용이 가능한 크기이며, 이 곳에서 전국인민대표대회와 당/정부 중요회의가 개최된다. 중앙홀 이외에도 대연회장과, 전국인민대표대회의 집무실, 각 성과 시,자치구의 이름을 딴 방 등이 있다. 인민대회당은 전인대(全人代) 회의나 기타 행사가 진행될 때를 제외하고는 일반인들에게 참관을 허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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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혁명박물관과 역사박물관

천안문 광장 동쪽에 나란히 서있는 건물로, 혁명박물관은 근대 100년의 중국역사에 관한 자료를 전시하고 있으며, 역사박물관은 고대에서부터 아편전쟁까지의 역사를 알기 쉽게 전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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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궁박물관

명청대의 황제가 살던 곳으로, 자금성(紫禁城)이라고도 한다. 동서 750㎡, 남북 960m, 면적 72만㎡로, 9,000개가 넘는 방을 보유하고 있다. 남쪽 끝의 천안문에서 북쪽 끝의 신무문(神武門)까지 일직선으로 전삼전(前三殿)과 후삼궁(後三宮)이 있다. 전삼전은 외조(外朝)라고도 불리며, 태화전(太和殿), 중화전(中和殿), 보화전(保和殿)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곳에서 국가행사와 의식이 행해졌다. 후삼궁은 내정(內廷)이라고도 불리며, 건청궁(乾淸宮), 교태전(交泰殿), 곤녕궁(坤寧宮)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황제가 정무를 보거나 황후 궁녀들과 일상생활을 하던 곳이다. 고궁의 입구인 오문(午門)은 높이가 37.95m, 벽의 두께는 36m이며, 오문 앞의 광장은 예로부터 형장의 구실을 해왔다. 오문을 들어서면 바로 고궁의 외조 부분인데, 대리석으로 된 내금수교(內金水橋)를 건너면 태화문이 있으며, 이를 통과하면 자금성의 정전(正殿)인 태화전으로 통한다. 고궁의 신무문을 나서면 경산공원(景山公園)이 있는데, 경산 정상에 오르면 황금기와 물결 치는 고궁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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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하이공원

고궁 서북쪽에 있는 이 공원에는 북해라는 아름다운 호수가 자리잡고 있으며, 요,금,원,명,청대의 역대 황제들의 어원(御苑)이었던 곳이다. 호수의 남쪽으로 공원의 상징인 흰색의 큰 탑이 보이고, 탑 내에는 궁중요리로 유명한 음식점이 있다. 여름에는 호수에 보트를 띄워 선상에서 주변경치를 완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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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박물관

'아비정전','광인일기' 등의 작가인 루쉰이 한동안 기거했던 가옥 옆에 위치해 있으며, 박물관 내에는 루쉰과 관련된 자료와 2,000 페이지에 달하는 번역원고, 1,100 통 이상의 편지와 시, 고서가 비치되어 있다. 또한 1912년부터 1936년까지의 일기도 보관되어 있는데, 루쉰이 별세하기 직전까지의 기록이 잘 보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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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엔탄공원

'명청 시대 때 황제가 오곡풍양(五穀豊穰)을 하늘에 기도하던 곳으로, 명대의 영락제 때 세워졌고, 청대의 건륭황제 때 개축되어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왔다. 고궁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에 각각 일단(日壇), 월단(月壇), 천단(天壇), 지단(地壇)이 대칭으로 위치해 있으며, 각각의 신을 모시고 있다. 또한 바깥은 사각이고 안쪽은 둥근 2중의 담으로 둘러싸인 3층의 원형 대리석 단인 원구단(圓丘壇)과 역대황제의 위패를 모셔둔 황궁우(皇穹宇), 황제가 오곡풍년의 제례를 행하던 기년전(祈年殿) 등의 주요건물이 있다. 원구단에는 원심(圓心)이란 둥근 대리석판이 있는데, 이곳에서 소리를 지르면 자신의 귀에만 크게 반향음이 되돌아 온다. 또 황궁우에는 속이 비어 있어 소리내면 반대쪽 담에 선 사람에게 들린다고 하는 회음벽(回音壁)과 돌 위에서 손벽을 한 번 치면 첫번째 돌에서는 한 번의 소리가, 두 번째 돌에서는 두 번의, 세 번째 돌에서는 세 번의 소리가 울린다는 삼음석(三音石)이 있다. 현재 이곳은 6km에 달하는 공원으로 탈바꿈 하였으며, 그 넓이가 고궁의 3배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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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동물원

면적 50만㎡ 정도의 중국 최대의 동물원으로, 600여종 7,000마리의 동물을 보유하고 있으며, 중국에서만 생식하는 팬더곰,금빛원숭이,사북상,동북호랑이 등의 동물을 볼 수 있다. 베이징 동물원은 규모가 크기 때문에 걸어서 모두 돌아보기에는 무리가 있으며, 관심 있는 것들을 취사선택하여 돌아보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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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허위엔

북경 중심에서 북서쪽으로 약 16km 떨어진 곳에 위치하는 290만㎡의 북경 최대규모의 공원이다. 북쪽에는 인공으로 축조한 만수산(萬壽山)이 있으며, 남쪽으로는 곤명호,서호,남호가 펼쳐져 있다. 금(金)대 이후 만들어져 8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으며, 이후 역대 황제의 행궁(行宮)으로 쓰였다. 원대에 호수를 확장하고 청대의 건륭제 때 보수하여 지금의 모습을 만들었으나, 1860년 영,불 연합군의 침입으로 많은 건물이 소실된 것을 청대 말기 서태후가 은신처 마련을 위해 해군지원비용을 유용하여 1888년 대규모의 재건공사를 감행하였다. 서태후의 이화원 재건은 청대의 군력약화에 큰 영향을 주어 청조의 멸망을 부추기는 한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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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장성

"달에서 보이는 유일한 인공건축물", 만리장성은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한 후, 30만의 군사와 수백만의 농민을 징발하여 벽돌을 쌓아 축조한 것으로, 그 길이가 만 여 리에 달하여 만리장성이라 이름지었다. 동쪽의 발해만에 접한 산해관(山海關)에서 시작하여 서쪽으로 실크로드의 입구인 가욕관(嘉?關)까지 이르는데, 총 길이는 6.000km이다. 현재 여행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장성은 팔달령(八達嶺)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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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13릉

명나라 13명 황제의 능묘로, 북경시내에서 서북쪽으로 40km 떨어진 창평현(昌平縣) 천수산(天壽山) 기슭에 위치해 있으며, 면적은 약 120㎡이다. 명나라 선조의 장릉(長陵)이 명 영락7년(1409년)에 세워진 것을 시작으로 하여, 이후에 11개의 능묘가 장릉의 양 옆에 세워졌다. 명 송정제 주유검(朱由檢)의 사릉(思陵)이 마지막 능묘인데, 청 순치(順治) 원년(1644년)에 정릉(定陵)이라고 칭해지고 땅 위에 건축하였다. 명말(明末)과 청초(淸初)의 많은 전쟁들과 그 이후의 끊임없는 침략으로 인해 훼손되었으나, 청 건륭(乾隆) 50-52년 (1785-1787)에 대규모의 복구공사가 진행되었다. 현재는 장(長), 정(定), 소(昭)릉 세 곳과 신도(神道) 네 곳만이 대외에 개방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정릉 지하 궁전은 1956년에 최초로 발굴한 황제 능묘로, 높이 27m 면적 1,195㎢의 완전한 석조구조물로 견고하고 삼엄하다.

승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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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서산장

높고 긴 벽으로 둘러싸인 거대한 이궁(離宮)으로, 564만㎡의 넓이에 벽의 길이는 10km에 이른다. 강남(江南)지방의 풍경을 모델로, 청대의 강희제가 1703년부터 만들기 시작하여 87년간에 걸친 공사 끝에 1790년 건륭황제 때 완성되었다. 역대 황제들이 여름에 북경의 더위를 피해 매년 4월에서 9월까지 이 지역에서 정무를 집행하였으므로 제2의 정치 중심지라고도 하였다. 피서산장은 크게 궁전구(宮殿區), 수원구(水苑區), 평원구(平原區), 산구(山區)의 4구역으로 나누어 지는데, 특히 수원구는 강남의 뛰어난 풍경을 모방하여 조성하였으며 그 시원한 풍경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황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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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빠미아오(외팔묘)

피서산장의 동쪽에서부터 북쪽에 이르기까지 8개의 사원이 자리잡고 있는데, 이들을 외팔묘라 부른다. 이 사원들은 강희제와 건륭제에 이르는 시기에 세워졌으며, 현존하는 사원 중에서 현재 진타종승지묘(晋陀宗乘之廟), 진령사(晋寧寺), 진락사(晋樂寺), 수미복수지묘(須彌福壽之廟)가 개방되어 있다. 진타종승지묘는 '작은 포탈라궁' 이라고도 불리는 티베트식의 건물이 특징으로, 마치 티베트에 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이다. 청대에는 티베트 불교(라마교)를 믿었기 때문에 티베트 형식의 사원이 많다. 진령사에는 세계 최대를 자랑하는 높이 22.8m의 목조 천안(千眼) 관음보살상과 십팔나한상이 있다.

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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쒸엔콩쓰(현공사)

다퉁의 남쪽으로 약 75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는 중국 오악(五岳)의 하나인 항산(恒山)의 산기슭에 세워진 사찰이다. 협곡의 골짜기 바닥에서 26-50m 높이의 절벽에 매달리듯 세워진 '하늘로 오르는 절'로, 북위시대(336-534년) 때 창건되었다. 대들보는 구멍을 파 산벼랑에 반쯤 꽂고 대들보와 기둥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40동의 전당을 잔도(殘道:벼랑과 벼랑 사이에 놓은 다리)로 연결하여 지었다. 예로부터 그 험난하기로 이름이 나 항산의 18 기경(奇景)으로 손꼽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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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강석굴

다퉁시에서 서쪽으로 16km 부근에 약 1km에 걸쳐 벌집같이 뚫린 53개의 동굴에, 17m에서 수cm 크기의 불상 5만1천 여 개가 돌에 새겨져 있다. 정교한 중국의 전통적인 조소 위에 인도와 아프가니스탄, 페르시아의 예술이 합쳐져 다채롭게 채색된 거대한 불상은 가히 환상적이다. 석굴 안에서는 당시의 건축양식이나 의상, 소품, 음악, 무용 등 다양한 자료들을 관람할 수 있다. 돈황의 막고굴, 낙양의 용문석굴과 함께 중국 3대 석굴로 손꼽힌다.

낙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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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먼석굴

낙양시 중심에서 남쪽으로 약 13km 떨어진 곳의 이하(伊河) 부근에 펼쳐져 있다. 북위(北魏)의 효문제가 다퉁에서 낙양으로 수도를 옮긴 494년 경에 운강석굴에 뒤이어 건축한 것으로, 이후 400년 동안의 보수를 거쳐 지금의 웅장한 석굴이 탄생하였다. 현재 남아있는 동굴은 약 1,352개로, 동굴 내에는 10만개의 불상과 40개의 불탑, 3,600여 개의 탑명 석각 등이 새겨져 있다. 바위에 직접 불상을 새겨넣은 것이 대부분으로, 벽화가 대부분인 돈황의 막고굴에 비하여 정교한 조각이 그 특징이다.

승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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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산

중국 5악(岳)의 하나로, 태실산(太室山)과 소실산(小室山)의 72봉이 있다. 지대가 좀 험한 편으로 일반 여행객이 오르기엔 무리지만, 모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사전준비를 철저히 하고 등산길에 오르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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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림사

북위 시대(495년) 때 숭산 내에 만들어졌으며, 527년 인도승 보리달마가 이곳에 와 선종을 시작하였다. 천불전에는 명대의 오백나한조비려의 벽화가 그려져 있으며, 사찰과 조금 떨어진 곳에는 달마가 9년 동안 면벽수행을 했다는 면벽동(面壁洞)이 있으며, 역대 승려들의 묘지와 탑림(塔林)도 있다.

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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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산

해발 약 1,545m, 중국 5악의 으뜸가는 산으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고대 제왕이 봉선(封禪)의식을 거행하던 신성한 산으로, 제사를 지내기 위해 태산에 오른 역대 황제로는 진시황, 한무제, 광무제, 당고종, 당현종, 송전종이 있다. 청대에는 강희제와 건륭제도 태산에 들렀는데, 건륭제는 11차례나 태산에 올랐다고 한다. 또한 진시황이 태산을 오르다 나무 아래서 비를 피한 후, 그 나무에게 오대부(五大夫)라는 벼슬을 내렸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 봉(封):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태산 꼭대기에서 제사를 지내는 것
* 선(禪): 하산 후 산 앞의 작은 언덕에서 단을 올려 제사를 지내는 것